영양탕 31-5628 팝니다



1999.12.11.-12.24.
서울 대안공간루프




그림을 영양탕에 비유되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화가를 만나는 것에 왠지 경건해진 마음이 든다. 우리에게 영양가 있는 뭔가를 제공해 주는구나 하는 기대감도 생긴다. 신발 한 켤레 값으로또는 두 켤레 값으로 판다고 한다. 미술 작품을 그 값에 비유를? 또 한 번 놀란다. 사람들은 그녀의 손을 빌어 표현된 그들이 가지고 싶은 그림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진지하게자신만의 세상을 서로 공유하며 주문받고 주문하게 된다. 대중들이 미술품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는 이주일 간의 기회를 루프에서 가지게 되는 것이다. 대안공간에서 벌어지는, 언젠가는 벌어져야 하는당연한 형태의 미술행위이다.

포천에 위치한 그녀의 작업실과 생활공간은 완벽한 그녀의 세상이다. 모든 것이 그녀의 손길로 이루어졌으며 어느 색채 어느 물건 하나 그녀의 일상과 격리돼 보이지 않았다. 세상과 떨어져 산다는느낌이 들었는데 그 곳에서의 몇 시간동안 몸을 묻고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니 그 현란해 보이는 색채는 오히려 편안해지고 차분해 보인다. 물론 화가 이진경의 느릿하고 차분차분하고 여유로운 말투와동작이 그럴 수 있도록 알파의 작용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처음에 촌스러울 정도의 현란한 색채를 대하면서 옛날 인상파 화가들이 보는 이의 눈을 아프도록 부시게 했다는 일화를 떠올리며 나의 눈도 이세상의 중간 톤과 중간 사고에 무척이나 익숙해져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녀가 영차 하고 들고 온 10여 년 간의 포트폴리오 속에서 나는 그녀의 색채와 형체들이 잠깐 유행하는 촌티패션의반영류의 그림이 아님에 감동스러웠다. 초기의 (그녀 표현대로) 표현주의적인 성향의 작업이 10여 년 전 애시당초 이루어 왔고 지금은 그에 비하면 정체되고 걸러진 결과물이다. 그녀의 그림 중추상화는 내 취향이 아니다. 그녀의 그림은 구상화 일 때 그 빛을 더 발하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나라면 추상화 주문은 안 하겠다. (아, 물론 관객이며 일반 대중으로서 느끼는 한 마디의 사심의 표현일뿐이다.) 이렇게 그녀에게 얘기 해 본다면 그녀는 “당신이 좋으실 대로…”하며 군말 없이 상대의 취향에 맞추어줄 준비를 할 것이다. 종교화처럼 중심인물이 또는 중심 물체가 화면의 정중앙에위치한다든지 모티브의 제한이 없이 그냥 그릴 수 있는 것은 죄다 소재가 된다든지 등등의 평소 그녀의 작업 분위기를 일단 접고 대중들과 정신세계를 공유하고 싶은 작업이 벌어진다.

이번기회에 관객의 취향이 돋보이는 전시를 구경하게 되는가 보다. 맞춤 그림을 구입하는 관객이 즐거워하며 그냥 비싼 그림을 바라보는 때 보다 체내 엔돌핀이 더 많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흐뭇한상상을 하게 된다. 특별히 저렴한 가격에 그녀가 맞춰주는 그림은 농부의 밭가는 행위가 어쩔 때는 더 존경스럽다는, 그래서 미술이 사회에 뭔가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참으로 부끄럽다는 이진경이이번에 루프에서 그녀만의 작업공간을 꾸미는 대중들을 위해 영양탕을 준비한다. 미술은 생각보다 사회에서의 역할이 다양하다. 그녀가 바라는 것처럼 사회에 뭔가 도움이 되는 작업을 분명제공하기도 한다. 그녀가 루프에 영양탕집을 차리는 것처럼…

글: 김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