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먼산 : 헤치고 흐르고
2021.12.10.-2022.4.24.
홍성 이응노의집
근원 김용준이 살고 김소월이 살아있었다. 그때는 호랑이도 살아 있었다.
100년 전, 먼 먼 산을 부른다. 지금과 같은 푸른 달이 뜨고
그래도 살아야 하는, 선하거나 못난 사람과 불꽃을 이고 앞장선 사람.
그 덕에 세상이 조금 나아졌다.
피 뿌린 만큼 제 몸 태워 달린 만큼…... 그래 우리는 봄을 품고 살 게 되었다.
먼저 살다간 사람의 마음이 어떨지 그 뒤를 쫓았다.
곳곳에 슬프고 억울한 가슴 아픈 사연이 많았다.
우금치에서 백산을 이루고 덤비던 떼죽음을 당한 2만 명의 농민들.
형장에서 비밀리에 목이 매달린 장두 전봉준,
인민군 오빠 대신 대살로 죽은 구례 산동 산수유 마을의 막내딸 백순례.
그래서 나온 노래 산동애가.
저 하늘에서 이 하늘로 모시고 보내는 잔치와 초혼의 굿을 벌인다. 꽃을 만들고 등에 불을 밝힌다.
이 땅에 무수하게 살다간 사람과 무수한 노래를 듣는다.
여럿이 함께 모여 지난 아픈 세월을 듣는다.
자, 이제 한 치 앞도 모르는 두려움을 잠시 접고 헤매기로 하자.
몸에 힘을 빼고 미끄러져 저 나무 끝을 스치고 고요한 달에 닿는다.
사방엔 개울물소리와 서리로 반짝이는 빛나는 땅바닥에 모든 것...
춥고 어둔 밤을 지나는 것은, 그저 깨어 따순 밥을 해 먹고 함께 노래 부르고 제 가던 길을 헤매고 흔들리더라도
다시 꼿꼿이 헤치고 나아가는 것이다.
펄펄 눈 내리는 찬 밤에 선뜻 눈발 헤치고 나가는 건 창밖 풍경을 보는 것보다 낫다.
나 스스로 씨앗을 틔우니 가슴이 열린다.
눈은 사선을 긋고 온 세상을 느리게 덮는다. 눈의 촉촉한 끈기는 모든 것에 달라붙어 세상은 하얗고 또 하예서
모든 것이 다 둥글게 덮였다.
이제 부끄러움과 빛나는 미묘한 풍경과 그 안에 숨 쉬는 티끌만 한 씨앗은 잠시 쉴 차례다.
눈이 녹아 드러날 땅 위에 모든 것은 변하고 변하지 않는다.
찰나에 긋는 것은 내가 가진 것 안에서 내가 개입되지 않는 상태가 되어 그리는 것이다.
아마 그 순간이 무위일까? 항상 터질 준비가 된 채로 사는 것.
헤매고 헤치고 흐른다. 살아간다.
모든 생명은 다 그렇게 하는 듯하다.
2021년 11월 28일 이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