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먼 산 : 눈은 나리고
A Faraway Mountain : Snow Falling



2022.8.3.-8.31.
제주 아트스페이스·씨










한 때 
불이었던 
오름
하나하나
검은 돌
하나하나

그러니 불타는 산
내내 살아서 타올라라.

맑고 푸른 바다와 박하고 억센 땅에 부는 바람, 그 속에 곁 하여 살던 생명들.
고된 물질로 몸과 미역을 따고, 3천평 보리밭을 일궈 간신히 다섯 식구가 근근이 먹고 살았다면 이제 육지 것들에 기대 풍광을 팔아먹고 산다. 
귤나무 세 그루면 대학을 보냈다는 것도 귤 밭을 다 갈아 엎는 이 마당에 다 옛 말이다.
백록담 하얀 사슴은 자개장에 박혀 있고, 깊은 바당 용왕 같은 옥돔은 머리를 간신히 보존한 채 진공포장 되었다. 불꽃을 지고 앞장선 장두 이재수는 대정마을 한 편에 돌로 남았다. 
출륙금지령이 법이라면, 계엄령이 법이라면, 국가보안법이 법이라면, 금을 넘지 말고 시키는 대로 소리 내선 안 된다. 손 끝에 가시가 매번 아프지 않을 수 없고 피붙이가 일 없이 죽어간 아픔 역시 충분히 가슴이 무너진다. 
하지만 눈부신 햇빛과 때 되면 부는 청명한 바람과 차고 기우는 달과 한없는 일렁이는 바다가 우리를 여기 이끌었을 것이다.
사는데 만나는 모든 낯선 생기와 깊은 슬픔과 두려움은 그저 새로운 풍경이라서 
그리 마음 쓸 게 아닐지 모른다. 
그래 이름을 불러 본다. 가라 앉은 모든 것을 다시 부른다. 
모여 만지고 부비고 기린다. 더운 밥을 함께 나눈다.
이 비가 꽃이 되고 살이 되고 강이 되고 너가 되고 오늘이 된다.

2022.7.3
이진경